진화심리학자 개리 마커스 “인간의 마음은 서툴게 짜맞춘 기구”
진화 역사·정신 영역 살펴 현명한 행동 막는 ‘생각의 함정’ 탐색
클루지
개리 마커스 지음·최호영 옮김/갤리온·1만3800원
‘클루지’는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을 뜻하는 공학자들의 용어다. 공학자들은 돈이나 시간을 아끼려고 클루지를 만든다고 하는데, 여기에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가장 기상천외한 클루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스물세 살에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뇌와 인지과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서른 살에는 뉴욕대에서 심리학과 종신 교수가 된 튀는 이력의 진화심리학자 개리 마커스의 주장이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완전히 맹목적인 진화 과정이 빚어낸 기이한 산물”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이런 주장을 담은 책 <클루지>는 자연선택이 최고의 설계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증명함으로써, 인간이 신을 따라 빚어진 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다윈의 전통적 진화론과 기독교의 창조론에 모두 딴죽을 건다.
기억을 예로 들어보자.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기억은 괴로운 과거를 그럭저럭 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믿어버리는 건 참 순진한 생각이다. 불완전한 기억 때문에 법정에서 틀린 증언으로 애꿎은 사람을 살인범으로 몰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억이 이토록 불완전한 이유는 우리가 어떤 것을 떠올리기 위해 기억이 저장된 장소를 검색해 찾아가는 게 아니라 기억과 결부된 맥락이나 단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맥락 기억’은 단서만 있으면 재빠르게 작동하지만 신뢰도는 형편없다. 만약 기억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진화했다면, 인터넷의 검색 엔진처럼 밑바닥에는 기억이 저장된 주소를 찾아가는 ‘우편번호 기억’을 깔고, 그 위에 맥락 기억을 얹어 신뢰와 신속함을 동시에 지닐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불완전한 ‘맥락 기억’에 의존하며, 이 때문에 기억에 뿌리를 딛고 있는 모든 파생상품들, 곧 신념·선택·언어·행복 등 인간을 특징짓는 모든 사고 행위들이 클루지투성이가 돼버렸다.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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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동물’이라 일컬어지는 인간이 비이성적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사고 체계가 ‘진화의 관성’의 자장 안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다세포 생물한테서 관찰되며 진화적으로 오래된 소뇌 등에 의존하는 ‘반사 체계’는 빠르고 자동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진화의 비교적 최근 산물인 전뇌에 기대는 ‘숙고 체계’는 신중하게 천천히 진행된다. 진화로 탄생한 정교한 추론 능력인 숙고 체계가 언제나 신뢰도 떨어지는 반사 체계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고 방해받기 때문에 문제는 발생한다. 배가 고플 때 우리는, 선조들의 생존을 위해 기능했던 반사 체계 때문에 눈앞의 식량을 무조건 입속에 넣었던 그들의 본능을 넘어서지 못하고 감자튀김을 먹어버린다. 탄수화물과 지방 덩어리가 건강에 좋지 않으며 조금만 기다리면 더 완벽한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숙고 체계의 합리적 추론은 무시당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나아가 도무지 생존과 생식에 도움이 안 되는 비디오 게임, 텔레비전 시청 등을 통해 쾌락을 느끼는 인간의 ‘클루지’ 같은 행복까지 살펴본다. 인간 마음의 결함을 뜯어보던 지은이의 결론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낙관론에 안착한다. “우리가 진화해온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솔직히 들여다볼 때, 우리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고귀한 우리의 마음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