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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르네상스] “문명축 이동…화엄개벽이 東로테르담 꽃 피운다” |
세밑 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해 12월 28일, 강원도 원주의 토지문화관을 찾았다. 전날 내린 눈으로 길이며 집이며 나무며 온통 흰 꽃밭이다.
문화관을 이리 저리 둘러보는데 검푸른 남색 개량 한복 차림의 어르신이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생명사상가인 김지하(69) 시인이다.
‘아시아 르네상스’를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했고 시인은 “경제지가 이렇게 스코프(scope. 범위)가 큰 걸 다뤄요?” 하며 흔쾌히 승낙했던 것이다.
2시간을 예정했던 인터뷰는 머리꼬리 잘라 본론으로 들어갔음에도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이상 이어졌다.
김 시인은 대서양 중심의 문명 허브가 동쪽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은 최근 물동량 자본 같은 경제분야에서 가시화되고 있지만 문화사상적 징후는 생태학 등에서 이전부터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기로 문제점을 드러난 서구 사상의 해결책을 화엄사상, 따뜻한 자본주의 등 아시아에서 찾을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신종플루와 생태계 파괴 등으로 지구가 병들고 있다는 말이 많습니다 생명사상가로서 현실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
-요즘 춥죠. 온난화 사이사이에 간빙기(間氷期)가 겹쳐들어서 그래요. 자전축이 이동하면서 북극을 형성하는 두 개의 극, 지리극(geographic pole)과 자기극(magnetic pole)이 상호이탈하니까 북극이 따뜻해지고 아프리카에 얼음이 어는 겁니다. 2004년에는 대륙판과 해양판의 대충돌로 인도네시아에서 26만 명이 한꺼번에 죽었는데 이 것도 자전축 이동과 관련 있어요. 더위와 추위가 교차생성되면 바이러스와 전염병이 창궐할거고. 이런 파국을 어떻게 창조적 개벽으로 바꾸는가. 이것이 초미의 과제지.
-중국의 정치ㆍ경제적 부상을 제외하면 서구인들은 아직 아시아에는 무심한 편이죠.
▶아니, 반응들이 있어요. 특히 문화쪽에서는 전통의 위대함을 많이 느껴요.
무용가 김매자씨가 프랑스 리용의 ‘메종 드 라 당스(무용의 집)에서 심청 무용극을 하는데 판소리 생음악을 배경으로 깔았는데 평가에 인색한 관객들이 공연 후 15분간 기립 박수를 했다는 거야. 또 한 번은 내가 파리에서 시낭송 후에 박윤초의 쑥대머리를 CD로 들려줬거든. 그런데 이를 감상한 현지인이 “제 3세계 음악을 많이 들었지만 이건 정말이지 이상하게 빨려든다. 혼란 속에 뭔가를 찾아가는 순정한 지향이 있다”고 하는거야. “이렇게 좋은 음악을 두고 왜 파리로 유학들 오느냐”고도 해. 판소리는 현대음악이라는 거지.
-아시아 시대를 예견하셨는데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정말 아시아를 주목하고 있군요. 우연의 일치입니까.
▶내가 예전에 그 얘길 했을 때는 사람들이 ‘미친 놈’ 그랬어요. 꿈꾼다고. 막상 월가가 터지니까 말들이 달라졌지. 사실은 6년전 쯤에 이런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받았어요. 무작정 얘기한 건 아니지. 당시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미국의 경제통들이 모여 구수회담을 5차례 가졌는데 여기에 참석한 한 사람이 “앞으로 세상이 크게 변한다. 김 선생이 미래 비전 같은 걸 얘기해 주셔야 한다”는 거야.
- “세상이 크게 변한다”는 게 무슨 뜻이었습니까
▶경제의 물동량, 바이어들 움직임, 이윤과 자본, 경제활력 같은 게 서에서 동으로 이동한다는 거야. 대서양 경제문명 허브가 로테르담인데 앞으로는 그게 동쪽의 로테르담으로 이동한다는 거지. 전문가들 연구는 아시아 중에서도 한반도 동남해안, 서남해안 그러니까 반도와 중국 동지나해, 현해탄 이런 곳이 최적지라는 겁니다.
-아시아 르네상스를 주창하면서 ‘화엄개벽’을 캐치프레이즈로 앞세우셨죠. 이해가 쉽진 않습니다.
▶동로테르담은 통합망(The Integrated Network)인데 이 말은 ‘중심이 있는 탈중심’ 이라는 얘기에요. 번뜩 생각드는 게 ‘아, 화엄경이구나’ 했어요. 화엄사상의 뼈대가 뭐요?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모두 다 다르게 비침(月印千江)이요, 한 톨의 작은 먼지 안에도 우주가 살아있음(一微塵中含十方)’인데 이게 바로 탈중심 그러면서도 중심이 있다는 소리지. 우리만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미 정보위원회도 현재 세계 정세는 다극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서에서 동으로 권력과 자본이 이동한다고 했어요. 이것도 따지고 보면 앞의 것은 탈중심이요, 뒤의 것은 중심이지. 경제뿐 아니라 세계는 지금 기후변화니 생태계 문제니 해서 시끄러운 데 그걸 개벽이라 보면 ‘화엄개벽을 잘 모시는 것’이야말로 새 시대의 중요한 과제라는 겁니다.
- 객관적으로 보면 세상의 중심은 아직도 서구사회입니다. 우리는 아시아 시대를 말하는 데 정작 그들의 생각은 다르지 않을까요.
▶서구는 자존심이 센 곳입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의 기득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그런데 최근들어 그 곳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단 말이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럽의 현 상황을 “캄캄한 대낮”이라고 했어요. 대낮이란게 유럽인들이 그렇게 자부심을 갖고 있는 전지전능에 가까운 서구과학, 특히 경제학인데 이게 지금 캄캄하다는 소리에요. 유럽의 경제학으로는 금융위기 이후의 유럽의 침체국면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걸 인정하는 거지.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현 상황은 “좌도 우도 중도도 해결하지 못하는 새로운 사태”라고 했어요.
- ...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는 데 시인은 사상계에서도 징후가 엿보인다며 말을 이었다.)
▶다윈이후 최고 권위의 진화론자인 테야르 드 샤르뎅(Pierre Teilhard de Chardin) 복권 움직임이 최근 2~3년동안 프랑스 철학계에서 불고 있어요. 이 사람의 진화이론 중에 ‘종이 먼저 진화되고 개체가 이를 뒤따른다’는 게 있는 데 이게 결국 종 중심, 전체주의 중심, 예수 중심을 말하는 거거든. 에코파시즘(eco-fascism)이 될 수 있다는 얘기지. 또 봐요. 최근에 불고 있는 다윈 열풍과 헤겔, 칸트 복고 붐. 반면에 68혁명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 페미니즘 이런 것들은 완전히 죽었어. 열패감에 잠긴 유럽이 사상적 ‘전체주의’로 퇴행하는 건지도 모르지.
-그럼 아시아에는 해답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내 스승(김정록 교수)은 진작부터 “언젠가는 동아시아 사상사 시대가 온다”고 그랬어. 스승의 스승인 중국 대학자 곽말약(郭沫若)은 이런 말도 했어요. “서양의 사상철학사를 쭉 검토해보니 훌륭한 게 많지만 길게 봐서 인류 전체의 사상사를 견딜만하지 못하다”고. 그렇다면 아시아에는 뭐가 있냐. 요즘 나오는 대안 이론들 봐요. ‘카오스모스(chaosmos. 혼돈속의 질서)’는 화엄사상과 다르지 않고, 금융위기 이후 주목받는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건 호혜와 평등의 신시(神市), 문화적으로는 풍류(風流), 정치적으로는 화백(和白) 같은 게 있어요. 생태학을 뛰어넘는 게 사물의 마음까지 포착하는 생명학이고. 이게 르네상스지. ‘입고출신’ 해야 해요.
-...(전공과목인 ‘생명’ 얘기가 나오자 시인의 목소리는 따라 올라갔다. 일간지에서는 처음 하는 말이니 이건 꼭 넣자고도 했다.)
▶서구의 생태학이란게 가시적 생태계에 대한 ‘객관적 관찰’의 학문이다 보니 한계에 부딪힌 거에요. 몇 개월은 먹히는 데 자꾸 바이러스 변종이 등장해. 생태학이란 게 실존적 지침이 없으니까 사람들의 관심도 시들해지고. 유럽에 가보니 녹색당도 이것 때문에 엄청 고민하고 대안을 찾고 있어요. 생명이나 사물이나 객관적으로 검토해도 잘 찾지 못하는 ‘내면의 변동’같은 게 있단 말이야. 일본과 미국 학계에서는 이미 ‘전신 두뇌설(세포 하나하나, 장기와 피부 하나하나에 퍼져 있다는 설)’이 정설이 되고 있어.
이걸 다스려야 진정한 생명학이 되거든. 화엄불교에서는 7~8세기에 이미 온 몸이 뇌, 마음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때요? 기계적인 조작에 불과한 로봇 물고기로 4대강 수질을 보호한다니, 웃지 않을 수 있어.
- 그런데 이런 말씀들이 실현 가능한 것들입니까.
▶(시인은 답없이 환하게 웃었다) 내 공부는 의심이 존재하는 공부이니다. ‘가능할까, 할지도 모른다’에서 시작해. 그래서 처음에는 ‘미친 놈’ 소리도 듣고. 쉽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해야지. 그런데 우리 지식인들은 게을러. 공부를 안 해.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예상하고 현재를 대응해야하는 데 그런 게 없단 말이야.
시인은 마이크를 빼놓고도 한국과 아시아의 옛 전통들을 수없이 꺼집어 냈다. 찬 공기 탓에 간간이 목이 잠겼을 뿐, 대화 내내 쉼표 한 번 두지 않았다.
종심(從心. 70세)을 한 해 앞둔 연배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김지하 시인은…
김지하는 1941년 목포에서 났다. 13살 때 빨치산 출신 아버지를 따라 원주로 쫓기듯 왔다.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를 다녔다.
“거지가 되더라도 구라파에 살겠다”는 짝사랑 여학생의 말에 혐오를 느껴 사랑도, 유학도 포기했다. 술 사들고 쫓아다니는 꼴이 싫어 교수되는 일도 관뒀다.
1964년 한일회담을 계기로 목포 ‘순둥이’는 저 유명한 ‘반골’이 된다. 그 후 줄곧 야인이다. 1970년에는 ‘오적(五賊)’으로 잠든 세상을 깨웠다. 반체제 인사로 찍혀 1980년까지 8년여 동안 영어(囹圄)의 세월을 보냈다. 출옥 후 전래 민중사상을 독자적으로 재해석하는 생명ㆍ평화운동을 전개했다.
그의 내면에는 민중사를 연구하는 역사가와 ‘입고출신(入古出新)’의 르네상스맨, 획일적 분배는 엉터리라는 ‘안티-막시스트’의 정신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이라는 문패에는 변함이 없다. 69세 노작가의 시는 이렇다. ‘가령 누가 날 미친놈이라 욕해도 이젠 허허 웃는다. 예전엔 결코 가만두질 않았지. 끝까지 쫓아가 항복과 사과를 받아냈었지.(못난 시들)’
인터뷰=박승윤 국제팀장
정리=양춘병 기자/yang@heraldm.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m.com


